[도서 리뷰] 펑지차이 장편소설 《전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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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리뷰] 펑지차이 장편소설 《전족》

by 똑똑소매 202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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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출간 이후 30년째 스테디셀러로, 중국과 미국, 일본 등에서 15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펑지차이의 장편소설 《전족》을 소개해드립니다.

우선 작가 펑지차이에 대해 소개해 드리면

그는 문화대혁명 후일담을 주제로 한 '상흔문학운동'의 대표적인 작가로, 그마저도 문혁 당시 박해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1985년 이후 '문화반사소설'로 중국 문단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작품 가운데  《백 사람의 십 년》은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보통 사람들이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으로,

1980년대 중반, 저자인 펑지차이가 신문에 문혁 경험담을 공모하자 4천 통이 넘는 편지가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는 편지를 일일이 읽고 그중 수백 명을 직접 인터뷰해 1996년 29편의 글을 모아 중국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으며, 한국어판에는 17편이 실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상흔문학(伤痕文学)'과 '반사문학(反思文学)'에 대해 알아보면,

상흔 문학은 문화 대혁명으로 박해 당한 사실들을 그려낸 소설입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중걸영(中杰英)의 「나부산의 혈루제(羅浮山血淚祭)」, 종박(宗璞)의 「나는 누구인가?(我是誰?)」, 장현량(張賢亮)의 「노인과 개에 대한 이야기(邢老漢和狗的故事)」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상흔 문학'은 역사나 삶의 상처를 기록하는 것이라면, '반사 문학'은 역사나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성찰하고 일어난 일의 근본 원인을 찾는 데 중점을 둡니다. 따라서 '반사문학'은 '문화대혁명'에 국한된 '상흔문학'이라는 주제의 경계를 허물고,  '반우파', '대약진운동' 등의 정치운동을 문학의 양식으로 판단하고 깊이 있게 고찰합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여지원(茹志娟)의 《잘못 편집된 이야기(剪辑错了的故事)》등이 있습니다.

 

상흔문학과 반사(反思)문학 사조는 이후에 전개된 심근(尋根)문학 사조 전개에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고 합니다.

소설로 돌아와  《전족》은

청나라 말기, 톈진의 부호이자 전족으로 유명한 동씨 가문 여성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소설은  10cm 발에 갇혀 사는 여성들의 아픔과 남성 중심의 왜곡된 중국 사회를 비판합니다. 

 

전족(缠足) 의  '전( 缠)' 은 '묶는다, 휘감다 '란 뜻으로  '전족'은 '(무언가로) 휘감은 발'이란 뜻입니다.

즉 중국에서 어린 여자아이의 발가락을 꺾어 발바닥에 붙여 하나로 뭉친 뒤  으로 꽁꽁 동여매 일정 크기 이상으로 자라는 것을 막는 풍습을 일컫는 말입니다.

상류층 여성을 중심으로 유행하다가 수백 년이 지나면서 모든 여성의 '의무'가 되었습니다.
전족은 송나라 이후 천 년을 이어온 중국 미인의 절대 조건이었습니다.

중국에는 예부터 '삼촌금련(三寸金莲)', '사촌은련(四寸银莲)', '오촌동련(五寸铜莲)', '육촌철련(六寸铁莲)'과 같이 '발'을 칭하는 단어가 다양하게 발달했는데, 이 소설의 원제이기도 한 ‘삼촌금련(三寸金蓮)’은 3촌이 9.9cm이니, 대략 10cm의 아주 작은 발을 의미합니다.

여성은 발이 작을수록 더 좋은 가문에 시집을 갈 수 있었고, 남성은 그러한 여성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의미했습니다.

이런 악습이 물론 중국에만 있었던 일은 아니었죠. 옛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이 17인치 개미허리로도 유명했죠. 옛날 코르셋 때문에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호흡 곤란으로 죽은 여자도 많았다고 합니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

소설의 제1화는 어린 소녀 과향련입니다.

소설 속 주인공 과향련이 어릴적 할머니로부터 전족을 당하게 되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전족의 과정은 끔찍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할머니는 아무 말도 안 들리는 듯 묵묵히 수탉 두 마리를 들어 향련의 발 밑에 놓았다. 수탉 목을 나란히 정리해 한쪽 발로 밟고 다른 발은 닭다리를 밟았다. 손으로 닭 가슴 털을 움켜쥐고 뽑아낸 후 칼자루를 쥐고 팍팍 수탉의 배를 갈랐다. 그리고 피가 흘러나오기 전에 얼른 향련의 발을 닭의 배 안에 집어넣었다. 후끈하다 못해 데일 것 같고 끈적끈적했다. 아직 죽지 않은 닭들이 발밑에서 버둥거렸다. '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만큼 아팠지만 걸으면서 꺾인 발가락을 짓밟지 않으면 전족 모양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할머니는 성황당 귀신처럼 살기를 내뿜으며 부지깽이를 들고 향련에게 걸으라고 다그쳤다. 울며불며 애원하고 떼를써도 소용없었다. 향련은 병든 닭처럼 뒤뚱거리며 억지로 걸었다. 넘어져도 금방 다시 일어나야 했다. 우드득, 우드득 발가락뼈 부러지는 소리, 달각달닥 뼛조각 부딪히는 소리, 처음에는 죽을 것처럼 아프다가 점점 감각이 없어지더니 나중에는 자기 발이 아는 것 같았다. 그래도 계속 걸어야 했다.'

 

'깨진 접시 조각을 모아 잘게 부순 후 발을 싸맬 때 헝겊 안에 넣고 같이 싸맸다. 당연히 사금파리 조각에 발이 찢어지고 상처가 생겼다. 할머니 몽둥이질이 정말 매서웠지만 향련은 도저히 움직일수 없었다. 몽둥이질보다 발이 훨씬 더 아팠다. 찢어지고 상처 난 발에서 피고름이 배어나왔다. 매번 발싸개 헝겊을 갈 때마다 썩은 살을 억지로 떼어냈다. 이것은 일부러 살을 썩게 하고 뼈를 상하게 해서 발 모양을 변형시키는 방법으로, 북방 지역에서 내려오는 전통적인 전족 비법이었다.'

 

제2화 이상한 일에서는 천진 골동품가게 주인 '동인안'이 등장합니다. 동인안과 둘째 아들 동소화가 진품, 가품을 구별하는 장면에서 동인안의 비범함이 드러납니다. 그 중 그림 안에 낙관을 숨기는 '장관(藏款)'을 가지고 진품을 구별해 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송나라 사람들은 그림 안에 글자가 보이는 것을 싫어해서 돌 위가 아니라 나무 사이에 낙관을 남긴다고. 숨기는 낙관, 즉 장관 (藏款) 이다. " 

 

제3화 이상한 일의 시작에서는 과향련이 '전족광' 동인안의 눈에 들어 동가로 시집가게 됩니다. 향련이를 동가로 보내며 할머니가 예쁜 신발 세 켤레를 내놓으며 아래와 같이 당부의 말을하죠.

 

'백자(百子)'라는 자주색 신발은 나중에 아들을 낳을 수 있게  해주고,

백자 밖에 덧신는 노란색 신인 '황도혜(黄道鞋)'는 가마탈 때 신고, 시댁에 도착하면 꼭 붉은 양탄자 위로 걸으며 혼례장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혼례를 치를 때는 '채당혜(踩堂鞋)'라는 신발로 갈아신고, 신방에 들어가서는 채당혜를 숨겨둬야 평생 무탈하고 복을 받을 수 있다.   

 

중국의 결혼 풍습이 복잡하긴 한데, 신발에 세세한 의미 부여까지 숨막힐 정도죠? 전통을 목숨처럼 고수하는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던 손녀에게까지 가혹한 전족을 가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제4화 나리들의 학문 대결에서는 이른바 '전족광'들이 모여 전족에 대한 식견을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이른바 전족 경연  대회인 '새각회(赛脚会)' 혹은 '양각회(晾脚会)'라는 말이 나옵니다. 새각회 중에서도 '대동 새각회( 大同 赛脚会 )'가 꽤 유명했나봅니다.

전족이 그 옛날 미의 기준이었고, 남성은 그러한 여성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의 신분과 지위를 의미했기에 여자들은 기를 쓰고 '새각회'에 우승하려고 했죠.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전락해 버린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부터 대동(大同) 여자는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와 가느다란 발을 중시했지요. 매년 4월 8일이 되면 온 성안의 여자들이 자기 집 대문 앞에 앉아 작은 발을 치켜세우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내보입니다. 간혹 가난한 집 아가씨의 전족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그 값어치가 순식간에 백 배 이상 치솟기도 합니다."

 

제5화, 6화에서는 향련이가 동씨 가문 내에서 벌어진 전족 경연대회에서 패하면서 남편에게 패했다는 이유로, 못생긴 발로 감히 나와 결혼 생활을 뻔뻔히 유지하려 하느냐라는 느낌으로 일상적인 구타가 이어집니다.

향련이는 이를 만회하고자 동가의 전족을 관리하는 '반이모'에게 전족과 관련된 여러 가지 규칙, 법도, 금기 조항 등에 대해 배웁니다.

 

제8화에서는 마침내 향련이가 동가 전족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전족광들은 이른바 신발 술잔(采莲船)을 돌아가며 술을 마시며 흥을 돋구는 장면이 나옵니다. 전족광들의 전족에 대한 식견을 겨루는 것을 넘어 전족에 대한 집착, 욕망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동가 전족 경연대회에서 향련은 우승을 했으나, 그녀를 시기하는 무리와 언제든 새로운 적수를 만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그녀는 동가에서 한시도 편안한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최고에 오르려면 끊임없이 겨뤄야 하고, 상대를 망가뜨리지 못하면 자신이망가진다는 것을..'

 

그 옛날 전족을 가하려던 할머니를 피해 울부짖던  어린 소녀가 이젠 스스로 전족의 굴레에 얽매인 기구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당시 여인들의 삶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제13화 뒤죽박죽에 가서는 전족 해방 풍조가 불면서 전족을 찬성하는 무리와 반대하는 무리 간에 갈등이 생겨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 배경으로 청나라 광서 (光绪) 27년에 발행된 <전족 중단 권고 시유>, <전족 해방 권고가> 등이 나옵니다. 

이러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향란은 전족의 전통을 고수하는 가풍을 잇고자 조금이라도 불란이 될만한 소지를 찾아 싹을 잘라버리죠.

여기서 잠깐,

중국 여성의 신체 해방 변천에 대해 잠시 설명을 해드리면,

중국 청나라 1890년대에 전족에 반대하는 이들이 딸들의 발을 묶지 않겠다고 동의했을 뿐 아니라, 아들들을 전족 한 여성과 혼인시키지 않겠다고 하는데 이를 '불전족운동(不缠足运动)'이라고 합니다. 이를 주도한 계층은 새로운 서양 사상의 유입을 빨리 습득할 수 있는 사대부 계급의 남성이었고 점차 시간이 흘러 당사자인 지식인 여성이 주도하는 경향으로 바뀌게 됩니다. 

20세기 초에는 전족을 하지 않는 여성 비율이 점차 증가하였고, 1950년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서 여성의 건강을 해치고 여성 억압의 도구라는 이유로 전족 금지를 명령하게 됩니다. 

전족을 하게 되면 사실 상 걷는 것 조차 힘들어 밖에 나와 생산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여성 일거리인 바느질, 견직물 짜기, 자수 등 집안에서 머물며 생산 활동을 하는 방식인 '여홍(女红)'에 참여하는 것에 국한되어 있었죠.

하지만 전족 금지 후 1950년대 부터는 농촌에서 여성들도 밖으로 나와 남성과 비슷한 노동 강도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생산량도 늘게 되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중국에  '전족'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1920년까지만 해도 여성이 가슴골이나 팔뚝 등의 신체를 노출해도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따라서 여성은 전통적으로 가슴을 천으로 둘러 가리고서 '두두(肚兜)'라는 속옷을 입게 되었던 것이죠. 자연히 가슴 발육에도 지장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서양 문물이 유입되면서 가슴에 두른 천을 풀고 속옷도 입지 않음으로써 가슴을 편히 숨 쉬게 하는 움직임인 '천유운동(天乳运动)'이 생겨납니다.

1927년 정부에서는 천유를 제창하며 여성의 가슴 결박을 반대했고, 이를 어길 시 벌금을 부과하기도 하였습니다.

 

소설로 돌아와,

전족을 반대하는 무리인 '천족회(天足会)'에 동가 둘째 며느리의 딸 월계가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향련은 전족을 고수하는 무리의 앞에서서 고군분투합니다. 

<백화보>에 <다시 전족으로 돌아가려는 자매들에게>라는 글을 개제하여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전족 여자가 자연미를 버리고 억지로 모양을 만든다고 비난하는데, 신여성이 곱슬머리를 만들고 가슴을 동여매고 높은 구두를 신는 것도 같지 않은가? 이것도 자연을 거스르는 일 아닌가? 신여성이 하는 것들은 모두 서양에서 전해진 것이다. 서양 나라가 강대하니까 중국이  서양의 악습을 배우는 것을 신식 유행이라며 반기는데, 만약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라면 서양 여자들이 중국을 따라 전족을 하지 않겠는가?'   

 

이에  더해서 의화단운동이 일어나는데, 서양 세력에 맞서 중국을 지키려는 의화단 정신의 분위기를 업고 향련은 전족 회복 을 이끄는 '복전회(复缠会) '를 결성하고 회장을 자처하게 됩니다.

 

그당시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려는 사람들로 뒤섞인 매우 특이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천진 거리에는 변발을 자른 사람, 변발을 기른 사람, 머리카락을 깨끗이 밀어버린 사람, 짧게 자른 사람, 가르마를 탄 머리, 전족, 전고을 푼 발, 다시 전족으로 돌아간 발, 천족, 가짜 천족, 가짜 전족, 전족도 천족도 아닌 발까지 다양한 남녀의 외형이 뒤섞여 있었다.'

소설을 옮긴이는 '강요된' 개혁은 '억압된' 악습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다라는 말을 하셨는데요.

그 당시 서로에게 고통과 상처를 주는 개혁이 아니었나 싶네요.

 

향련이 복전회 회장이 된 후, 천족회의 회장 우준영과 만나 단판을 벌이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이 소설의 명장면으로 꼽히기도 하면서 이후 벌어지는 반전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됩니다.

이후 이야기는 스포가 될까봐 말씀은 못드리지만 전족으로 인해 고통받던 여자들의 기구한 삶을 정말 여실히 드러내는 명작이라 생각됩니다. 그냥 수박 겉핥기 식으로만 알고있었던 전족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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