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지차이 《백 사람의 십 년》 ㅣ 문화대혁명 ㅣ 추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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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지차이 《백 사람의 십 년》 ㅣ 문화대혁명 ㅣ 추천 도서

by 똑똑소매 2024.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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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사람의 십년
중국 문화대혁명 시기 보통 사람들이 겪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 『백 사람의 십년』. 1980년대 중반, 저자인 펑지차이가 신문에 문혁 경험담을 공모하자 4천 통이 넘는 편지가 도착했다. 그는 편지를 일일이 읽고 그중 수백 명을 직접 인터뷰했으며, 1986년부터 그 가운데 백 사람의 이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1996년 29편의 글을 모아 중국에서 단행본으로 출판되었으며, 한국어판에는 17편이 실렸다. 문화대혁명이 현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10년이라는 기간, 전국적인 동원의 규모, 막대한 피해, 비극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현재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웃지 못해 우파로 몰린 남자 이야기, 아무도 살지 않는 서북 황무지에서 원자폭탄 개발에 열정을 바친 사람들에게 찾아온 문혁의 비극, 마오와 연인이라는 두 숭배의 대상 사이에서 고민했던 지식 청년 등 소설같은 현실의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저자
펑지차이
출판
후마니타스
출판일
2016.07.20

 

"나는 도대체 죄가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라고 울부짖는 여성이 있습니다.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였다고 고백하고 있네요.

1966년 8월 26일 중학생 한 무리가 발로 문을 차며 들이닥치더니 한 남성을 자본가라며 물건을 닥치는 대로 박살냈습니다.

남성은 그저 아래층에 방 하나가 남아 세를 주었을 뿐이고, 그림 한 점이 미국에 전시되었던 것이 다라고 합니다.

중학생 한무리가 홍위병이었고,

그 시절 세를 놓는 것도 일종의 '착취'라고 여겨 노동을 통한 정당한 이익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미국에 그림을 전시한 일을 놓고 제국주의와 연락을 하고 외국과 내통한 간첩이라고 몰아부칩니다.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드는게 다라면 다행이게요.

홍위병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남성과 그의 부인, 자녀까지 방안에 가둬 가죽 혁대로 두들겨 패고 머리카락을 전부 잘라버립니다.

그리고 거리로 나가 비판 투쟁을 합니다.

그 시절이 바로 문화대혁명이 있었던 때입니다.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였다는 여성이 바로 그 당시 남성의 딸이었습니다.

홍위병들은 모진 고문을 하면서도 그들이 자살할까봐 집안의 모든 전선을 끊어 버렸습니다.

가족들은 모진 고문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모의합니다.

그때 사과 깎는 작은 칼을 발견하곤 의학을 공부했던 여성은 칼로 경동맥을 끊어 죽을수 있다고 부모님께 말하죠.

그때 부모님은 "다행히 내 딸이 의학을 공부해서 이런 방법도 알고 있구나."라며 빨리 죽기를 아주 간절히 바랬다고 합니다.

동물도 못 죽이던 여성은 간절히 죽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간청에 어쩔수없이 아버지의 경동맥을 더듬어 단번에 찔렀고 뒤이어 어머니를 죽이고 본인도 따라 죽으려 했으나, 둘째 오빠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와 본인을 저지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오빠를 힘껏 밀어내고 3층 높이에서 뛰어 내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살아나게 되었고, 그 일로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열흘 뒤 구속됩니다.

죄명은 '문혁 항거죄'

자본가계급 아버지를 죽였고. 그건 아버지를 문혁의 박해로부터 구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

문화대혁명 시절은 죽는 것도 문혁에 항거하는 죄질이 무거운 정치범죄로 간주되었습니다.

여성은 하루빨리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죽기를 바랬던 아버지를 구한 걸까요? 해친 걸까요?   

 

문화대혁명 때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일들이 자행되던  그야말로 집단 광기가 판을 치던 시기였습니다.

부유한 자본주의보다 가난한 공산주의가 더 낫다고 믿은 마오쩌둥은 1966년 자신의 유토피아적 목표를 우선 순위에 두고 문화대혁명을 시작했습니다. '홍위병'들은 물질적 인센티브에 의존하여 '자본주의 길을 걷는' 이른바 '주자파(走资派)'들을 비판하고 권력을 장악하도록 독려하는 '조반유리(造反有理, 혁명은 죄가 없다)'하도록 하였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개조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것을 극단적이고 비인간적인 폭력의 방식으로 이루려 했던 마오식의 '문화대혁명'으로 한 세대 많은 중국인들이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펑지차이의 《백 사람의 십 년》이라는 책은 문혁으로 고통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책으로,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민중과 울분을 참고 있는 수많은 대중을 만나고 싶었다고 합니다.

문혁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 평가는 마오의 일시적인 판단 착오로 발생했지만 그 과정에서 장칭 등 사인방 세력과 반동 세력이 상황을 잘못된 방향으로 악화시킨 것으로 대부분의 책임은 사인방과 반동 세력에 뒤집어 씌웠고, 마오는 과오보다는 공이 더 많은 혁명적 지도자라고 강조합니다. '잃어버린 10년'을 고통스럽게 지나왔던 인민 대중에게는 그 어떤 구체적이고 공식적인 사과와 평가가 생략되어 있다는 점을 작가는 안타깝게 여겨 이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작품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이라 보는지 묻는 질문에,

'문학의 가치는 작고 큰 것이 아니라 가깝고 먼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역사적으로 강렬한 충격을 주었던 그 어떤 문학 작품도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했지만, 루쉰의 작품처럼 사람의 정신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문학에는 영원한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백 사람의 십 년》에 실린  문화대혁명의 일화를 한 가지 더 소개하면,

문혁 초기에 우리는 나이 많은 교사 한 병에 대해 비판투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원래 교장이었는데 반우파 투쟁 당시 우파로 분류되어 학교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었어요.  그녀에게 문제를 자백하라고 강요하면서, 짓궂은 친구 몇몇이 마늘을 한 주먹씩 계속 먹게 했답니다. 교사가 도저히 못 먹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구두약을 섞어서 같이 먹으라 했고, 흙탕물을 적신 포도 잎을 압안으로 밀어 넣었어요. 그때 우리는 사람을 박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영웅적이고 정의로우며 혁명적인이라고 여겼습니다. 당시 학생들의 의식이 그랬어요....

 

바이두

 

문혁과 관련된 주요 사건 및 용어들을 알아보겠습니다.

  • 계급 청산 대오 운동( 清理阶级队伍” 1968年5月25日—1970年 ): 1968년 베이징의 신화 인쇄공장에서 군중을 조직해 공장 내 반동 세력을 색출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중앙문화혁명 소조의 핵심 일원이었던 야오원위안이 이를 마오쩌둥에게 보고하고 마오가 이 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라고 지시함으로써 계급 청산 대오 운동은 문혁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정치 운동이 되었다. 이 운동으로 중국 전역에 사망한 사람이 50만명, 비판당한 사람이 3천만명 이상이었다고 한다. 계급 청산 대오 운동 기간에 중국 북방 지역의 한 대도시에 일명 '63호'라는 유명한 공장이 있었는데, 이를 불법 감옥으로 만들어 수많은 지식인들과 간부들을 박해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 반우파 운동: 1957년 자산계급 우파를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전개된 정치 운동. 당내 정풍 운동을 전개해 수많은 당원과 지식인이 우파 분자로 몰려 농촌으로 하방되었고 노동 개조 교육을 받았다. 이들이 문혁 기간에 또다시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 명예 회복 정책(落实政策): 문혁 기간에 감옥에 가거나 직장과 당 조직 등에서 해고되는 등 박해받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멱적인 재조사를 통해 누명을 벗기고 명예를 회복시킨 정책이다.
  • 비판 투쟁 대회(批斗): 비판 대상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광장이나 학교 등 공공장소나 거리로 끌고 나와 대중 앞에서 공개적으로 비판을 하는 행위. 비판 투쟁 대회를 할 때 단상 위의 비판 대상자들에게 씌운 고깔모자를 '큰모자(大帽子)'라고 하는데, 신상 명세를 비롯해 그 사람의 정치적 악행 등을 써넣기도 했다.
  • 조반파(造反派): 홍위병의 한 종류. 1966년 베이징의 칭화대학에서 처음 결성된 홍위병은 크게 고위 관료 출신 자녀들로 구성된 보황파(保皇派, 보수파)와 주로 노동자, 농민 계급의 자녀들로 구성된 조반파로 나뉘었다. 보황파는 주로 마오쩌둥과 기존 당 조직 및 관료 조직을 옹호하려는 성격이 강한반면, 조반파는 마오 사상을 옹호하고 기존 당 조직 및 관료 조직을 반대했다. 
  • 농촌 하방 활동(插队): 문혁 기간 수많은도시 청년을 농촌에 보내 현지 집단농장 등에서 일하게 한 사회정치적인 운동. 문혁 전인 1955년 도농 간 차별을 축소하고자 처음 시작되었다. '상한하향 운동(上山下乡)', '하방(下放)'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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