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12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타이완 문학 붐’을 일으킨《귀신들의 땅》의 작가 천쓰홍이 <67번째 천산갑>이라는 소서을 가지고 왔다.
지난 여름 대만 작가 천쓰홍의 장편 소설 <귀신들의 땅>을 읽었다. 다섯 명의 누나를 둔 천톈홍의 시선에서 진행되는 소설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아선호사상이 극심했고 국가적 억압도 심했던 1980년대 대만. 주인공 남성은 게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아들 대접을 못 받고 외국을 떠도는 신세다. 현재 그에게는 누나만 다섯이 있는데, 누나들은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에게 자식 취급도 못 받고, 결혼 후에는 남편과 자식에게 발이 묶여 외국에도 못 나간다. 천씨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타이완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소설 중간 중간 등장하는 '중원절(中元节)'은 중국판 할로윈데이 같은 날로, 음력 7월 15일 전후 약 한달간 지옥문이 열리고, 죽은 귀신들이 땅으로 내려와 산 자들의 집을 방문한다고 한다.
소설에서도 그런 장면들이 많이 등장해요.
타이완을 방문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일본처럼 집이나 가게에 위패 같은 것을 모신 풍경을 종종 엿볼 수 있는데.. 대만의 독특한 풍경인것 같아요.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과 연계된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이 타이완에서 한 형태로 자리잡은 '동지문학(同志文学)'의 종류라고 하네요.
타이완은 아시아 최초로 동성 결혼을 합법화 한 나라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소수자를 다룬 문학이나 영화 작품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것 같아요.
상견니로 유명한 허광한이 나온 '해길랍' 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처음에는 풋풋한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성소수자의 얘기였거든요.
암튼 <귀신들의 땅>은 다 읽고 나면 누가 귀신이고 누가 사람인지 헷갈리는 참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67번째 천산갑( (第六十七隻穿山甲) )』도 동지문학에 들어간다.
동성애자 남성과 이성애자 여성의 오랜 우정과 헌신, 상처와 이해를 담아낸 작품이다. ‘67번째’라는 숫자는 단순한 개체 수를 넘어, 반복적으로 희생당하는 존재들의 상징으로 읽힌다.
천쓰홍은 우연히 독일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타이완 출신 천산갑을 라이프치히 동물원에서 만난 순간부터 이 글이 탄생했다고 한다. 천산갑과 가볍게 인사하고 옆자리에 있던 한쌍의 남녀의 이야기를 듣고, 그 둘만의 이야기와 비밀을 써보고 싶어졌다고 한다.
소설 속 '그녀'와 '그'는 어린시절 침대 매트릭스 광고 모델을 했다. 침대에서 편하게 자면 되는 것이었다. 어려울 것이 없었다. 둘은 아주 잘잤고 광고는 성공해 둘은 유명세를 치르게 된다. 소녀는 모델을 시작으로 방송에 자주 등장했고 매트리스 광고 꼬리표가 그녀에게 평생 따라 다녔다. 하지만 그것은 소녀가 바라던 삶이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걸 한 번도 표현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는 엄마에게도, 대학 시절 연인에게도, 모델 광고 속 모습에 반한 남편에게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한채 어느덧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되었고 타이완 거물 정치인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반면 '그'는 파리의 비좁고 낡은 아파트에서 지낸다. 연인이었던 J를 떠나보내고 무기력한 삶을 이어가다 어린시절 '그녀'와 함께 찍은 영화 덕분에 둘은 재회하게 된다. 어린시절 천산갑과 함께 찍은 영화가 4K로 복원되어 낭트 회고전에 초청된 것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그당시 천산갑을 양식하며 큰 돈을 벌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천산갑은 그저 소년과 교감할 뿐.
천산갑이라는 동물은 지극히 예민해 작은 충격에도 쉽게 죽어버린다. 몸을 둥글게 말고 그대로 생을 달리한다.
'그'와 '그녀'는 중년이 되기까지 그저 67번째 천산갑이 되어 고통 속 나날을 보내왔던 것이다. 천산갑처럼 몸을 웅크리고 바깥과의 접촉에서 자신을 지키듯 말이다.
'그'와 '그녀'가 재회하며 소설은 과거와 현재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가 잃은 어린 딸 '팡싼'과 그의 아들.
게이인 아들을 병으로 치부하는 남편으로 부터 도망치던 그녀와 아들.
파리에서 만난 그녀의 아들과 '그'는 사랑을 나누고.
J를 통해 관계를 맺은 요가하는 남자, 헤어숍 사람들 등.
이들 모두가 67번째 천산갑인지도 모른다.
아시아에서 소수자로 사는 삶.
가부장 체제에서 여성으로 사는 삶.
순하디 순한 동물로 사는 삶.
모두가 67번째 천산갑인 것이다.
동성애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가진 분들은 '동성애'라는 틀에 갇히기 보단 '한 사람'이 고통을 이겨내는 과정을 담은 소설로 접근하시는 것도 좋다.
삶에 대해, 관계에 대해 성찰해 보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남자는 게이였고 여자는 유쾌하지 못한 이성 혼인 생활에 갇혀 있었다.
어려서 함께 자란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남달리 의지하고 있었다.
깨어보니 우리의 온몸에 천산갑이 뚫어 놓은 구멍이 남아 있었다. 수없는 상처와 구멍.
109페이지
사실 죽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죽지 못하고 다시 깼다. 잠에서 깨면 반쯤 죽은 것처럼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꼭 물에 빠진 것 같았다. 숨쉬기도 힘들고 사지가 굳어 있었다. 분명히 침대 위에 누워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추락하는 장면이 나타났다. 남편이 옆에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웃는 얼굴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113페이지
이 작은 아파트를 벗어나고 싶었다. 사방의 벽과 천장, 바닥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투명해지더니 비닐 랩으로 변해 작은 아파트 안에서 자고 있던 남녀를 감싸기 시작했다. 슈퍼마켓 냉장고 속의 생닭처럼.
192페이지
당신들은 뭘 근거로 그렇게 짜릿하게 살고 있지. 어째서 눈빛만 마주쳐도 그렇게 짜릿한 거지. 짜릿하고 나서 임신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된다니. 숲은 왜 당신들만의 것인가. 우리는 짜릿할 수 없어서 당신들을 경시하고 차별하는 거야. 알겠어?
325페이지
고통은 과일의 씨처럼 아주 작고 단단했다. 원래는 침착하고 조용하며 부끄럼을 타기 때문에 복강 깊은 곳에 숨어 있었으나, 바람의 무거운 타격에 순간적으로 파열되어 무수히 많은 미세하고 날카로운 파편들로 변했다. 이 파편들이 몸속에서 장기들을 공격했다. 그녀의 뇌 속에 각종 혼란한 고통의 기억이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
한 무리의 사람들이 두 손으로 거칠게 천산갑의 비늘을 뽑았다. 천삽갑들의 고통이 깨어났다. 그들은 아직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몸을 비틀면서 소리 없이 울고 비명을 질러 댔다.
약방에서 사온 낙태환을 삼키자 몸이 수원으로 변했다. 날카롭게 울부짖는 붉은 시냇물을 토했다.
470페이지
어디서 굴러들어온 정신병자 같은 여자가 프랑스 시골에서 차를 몰면서 게이미에게 자기 아들을 짜릿하게 해 준 적이 있느냐고 묻고는 웃다가 또 울고 있네. 절망적인 슈퍼 멍청이.
*天体营: 일정한 지역에서 사람들이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집단적으로 놀이와 운동, 오락, 휴식하는 문화로 경찰이 단속하지는 않는다. 이 표현은 서양에서 유행하는 이런 나체 문화에 대해 중국인들이 붙인 말이다.
*玻璃: 원래 유리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Boy Love', 즉 남성 동성애자의 이니셜 BL을 의미한다. 중화권에서는 남성 동성애자들을 칭하는 은어다.
*同志: 중화권에서 남녀 동성애자들을 통칭하는 용어다.
*게이미(Gay蜜): 여성들의 남성 동성애 친구를 말한다. 그들에게 'Gay미'는 가장 안전하고 위험이 없으면서도 친밀한 남성 친구를 의미한다.
*타이완 동지 운동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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