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흔적을 찾아서, 임정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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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창고/중국 문화, 뉴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흔적을 찾아서, 임정로드

by 똑똑소매 202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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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역사도 관심있는 똑똑소매입니다. 그동안 중국의 문화에 관한 포스팅을 몇 번했는데, 오늘은 한국의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중국의 도시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중국 문화에 관한 포스팅 확인하고 가실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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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임정로드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로드 다큐 <임정>과 도서 <임정로드 4000km>를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요.

임정로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유적지 경로를 말합니다.

상하이(1919)→항저우(1932)→난징(1937)→창사(1937)→광저우(1938)→류저우(1938)→치장(1939)→
충칭(1940)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정로드

 


대한민국이라 명명된 국가가 만들어진 곳이며, 우리 헌법이 세계만방에 공표된 곳이라고 합니다.

서금이로에서 걸어서 5분 거리라고 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익히 들어보셨을 겁니다. 상하이의 번화한 신천지 거리에 외롭게 한 켠에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방문했을 때는 간간히 기부금 받아서 유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 보존히 잘 되면 좋겠습니다.

최준례 여사는 이 집에서 둘째 김신을 출산했지만 낙상사고와 폐병까지 악화돼 타계하였다고 합니다. 영경방 거리는 원래 상하이 지역에서 제일 가난했던 사람들이 살았던 동네로, 선생도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고 합니다. 김구 선생의 어머니는 가족을 위해 수시로 중국인이 다듬고 버린 채소껍질을 주워다 삶았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설립되기 8년 전 1911년에 신규식 선생이 상하이에 망명해서 거주한 곳입니다. 독립운동을 효과적으로 진행하려면 중국 애국지사들과 강력한 협력체제 구축이 필요함을 느끼고, 오늘날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는 쑨원(孙文)의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해 1911년 10월 청조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신해혁명의 시발점이 된 우창혁명에 참가합니다. 그후 한인 청년들의 교육을 위해 힘쓰는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을 위해 상하이에 한국인의 활동 기반을 마련합니다.

선생의 맞은편 집은 1921년 중국 공산당을 창당한 주역이자 당 중앙서기에 선출되었던 천두슈(陈独秀) 선생이 살았다고합니다.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님의 시계 일화는 유명하죠.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치루기 전 김구 선생님과 나눈 대화입니다.

'제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따라 6원 주고 산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이지 않습니까? 제게는 이제 한 시간밖에 소용이 없는 물건입니다'

예전 루쉰공원이었죠. 참고로 루쉰은 중국의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유명한 소설가이자 사상가입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아큐정전>과 <광인일기>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공원은 우리에게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장소이죠. 바로 윤봉길 의사의 거사가 치뤄진 장소이기도 합니다.

윤의사의 호를 따서 매헌으로 윤봉길 의사 기념관 현판이 달려있습니다. 1932년 4월 29일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물통형 폭탄을 터뜨려 주요 일본 군간부가 죽었습니다. 도시락 폭탄은 불발되고 현장에서 체포된 후, 약 6개월 간 모진 고문과 폭행을 당하다가 총살되셨습니다. 당시 현상금 200억원이 걸려있던 김구 선생의 정보를 캐기위해 더 모진 고문을 가했지만 윤의사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구 선생님 해방 후 고국으로 들어와 가장 먼저 박열을 통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삼의사'의 유해부터 가장 먼저 수습했던 것도 윤의사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한 것일 수도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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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 의거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항저우로 이동해 활동하면서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이 피난 생활을 하던 곳입니다.

주푸청 선생의 도움을 받아 자싱으로 피신하십니다. 김구 선생은 일제의 수색을 피해 비상구 1층으로 내려가 주아이바오와 함께 배를 타고 호수로 피신하십니다. 붉은 고추는 안전, 검은 적삼은 위험을 표시하며 피난 생활을 했고, 선상에서 국무회의를 개최하는 등 위험한 피난 생활을 이어나갔다고 합니다.

200억원이 넘는 현상금의 유혹도 뿌리치고 주푸청(褚辅成)선생은 아들과 며느리, 심지어 양아들까지 나서서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의리와 신의를 지켰다고 합니다.

 

영화 암살에서 조승우가 '밀양사람 김원봉이오'라고 말하면서 김구 선생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배경은 자싱입니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주요 인사들이 자싱에서 피난생활을 이어갈 때, 우리 임시정부도 항저우에 터를 잡아 꿋꿋하게 정부로서 모습과 기능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의거 후, 일제의 탄압을 피해, 항저우로 임시정부 터를 옮깁니다. 청태 제2여사에 이어 이곳 항저우 청사로 옮깁니다. 여기에서는 김철선생, 송병조선생, 차리석 선생의 임시정부를 지켜나간 흔적을 엿볼수있습니다.

참고로 항저우청사는 2014년 중국의 국가급 항전 시설 및 유적지로 지정되었습니다. 유학생 사이에서도 반드시 와야 하는 필수코스라고 합니다.

이곳에 설치미술가 강익중·서경덕 교수 ‘임시헌장’ 225字 새긴 작품이 기증되었다고 합니다.


이 곳은 우리의 가슴아픈 역사와도 관련있는 곳이기 때문에 꼭 한번 들러보고 싶습니다.

일제의 성노예 관련 유적지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합니다. 박영심 할머니가 이곳 두번째 건물 19번 방에서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하던 곳으로, 난징 시내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 설립을 두고 정부와 언론, 지역주민, 부동산 업자들까지 10년간 치열한 논쟁을 펼쳤지만 '역사를 바로보자'는 결정이 났고, 모두 그 결정을 받아 들였다고 합니다. 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박영심 할머니의 증언이라고 하는데요. 할머니는 이곳을 방문해 '내가 있던 곳이 바로 여기'라는 증언을 하자 중국 정부는 직접 나서서 할머니의 증언과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우리 교과서에도 실린 할머니의 임신한 모습의 동상이 진열관 입구에 있다고 합니다. 내부촬영을 금지할 정도로 충격적이고 섬뜩한 내용이 즐비하다고 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할머니의 임신한 사진부터 시작해서, 전라의 사진, 일본군에 배포된 '돌격 앞으로'라는 문구가 새겨진 콘돔 등. 그리고 진열관 가운데 벽면에 70명의 할머니 얼굴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수가 한국 출신이라고 합니다.

리지샹위안소는 당연히 입장료는 무료이고, QR코드를 찍으면 한국어 안내방송도 있다고 하니 꼭 한 번 가봐야 겠습니다.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중국 국민당의 수도였던 난징이 일제에 함락됩니다. 전운을 감지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더이상 난징에 머무를수 없는 상황이라 창사로 이동하여 원북리 6호에 자리를 잡았으나 현재 정확한 위치를 특정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1938년 5월 7일 김구선생이 <3당 통합회의> 도중에 피격당한 장소라고 합니다.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후, 혼란을 틈타 민족해방과 광복의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김구선생은 3당 합당을 추진하였습니다.

김구 선생이 이끄는 한국국민당, 조소앙의 한국독립당, 지청천의 조선혁명당이 합당을 추진하는 자리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조선혁명당의 일원 중 몇명이 모의해 한국청년 이운한을 이용해 김구 피격한 사건입니다. 다행히 구사일생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송혜교씨가 창사 임시정부 청사에 한글안내서를 기증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0년 9월 충칭으로 옮겨온 뒤 입주했던 마지막 청사라고 합니다. 특히 연화지 청사는 김구 선생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해방 후 조국으로 돌아갈 때 1945년 11월 3일 기념비적 마지막 사진을 찍은 장소라고 합니다. 그리고 반세기가 훌쩍 지난 후, 우리나라 대통령 중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하였다고 합니다.

청사를 지키고있는 것은 충칭으로 유학 온 한국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 해설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 위 포스팅은 도서 <임정로드 4000km>의 내용을 주로 인용하였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따라 중국 관광지를 여행하는 것도 좋으나, 임정로드를 따라 우리에게 의미있는 곳을 돌아보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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